동아시아 사회를 실체적으로 규명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 국가들 안에 존재하는 불균등한 주변부의 특성과 양상을 ‘주변의 시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이데올로기적 성향이 강한 영화 텍스트의 서사 및 시선 분석을 통해 한반도·중국·일본의 주변부 지역의 정치적 풍경을 다각적으로 살펴봤다. 연구의 수행을 위해 지역의 역사성과 장소적 특성을 중요시하는 지정학적 사고를 연구의 기본적인 토대로 삼았고, 최원식과 백영서가 주장하는 ‘주변의 시각’을 영화 텍스트 분석의 연구방법론으로 활용했다. 한반도의 주변부 연구에는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의 관점을 적용해 분석을 시도했고, 테사 모리스-스즈키의 ‘변경’ 이론과 이시하라 슌의 군도를 바라보는 전환적 시각으로부터는 일본의 주변부를 고찰하는 중요한 단서와 관점을 가져왔다. 연구는 구체적으로 일본의 주변부, 중국의 주변부, 한반도의 주변부로 나눠 각 주변부 지역을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을 좇거나 비판하는 작업을 통해 해당 주변부의 특성과 정치적 풍경을 살피고 고찰하는 방식을 취했다. 일본의 주변부 연구는 자기합리화로 일관해 온 일본의 국가주의 시선에 포획된 <신들의 깊은 욕망>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비판적으로 분석해 오키나와와 이오섬이 처한 일본의 ‘내부 식민지’적 상황을 규명하려 했다. <신들의 깊은 욕망>을 통해서는 근대 이후 문명화 명분으로 일본의 내부 식민지가 된 ‘기지의 섬’이자 ‘관광의 섬’인 오키나와의 정치적 풍경을, 또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통해서는 아시아태평양전쟁의 ‘내부 희생양’ 이오섬의 실상을 만날 수 있었다. 또 한때 일본제국의 영토였던 사할린의 한인 수난사를 그린 <명자 아끼꼬 쏘냐> 연구를 통해서는 전쟁기에 병참기지로 이용됐던 사할린에 이주한 한인들이 받았던 차별과 냉대, 그리고 그들이 전쟁이 끝나고도 사할린에 남을 수밖에 없었던 동아시아의 냉전 상황 등 지정학적 맥락을 짚어봤다. 중국의 주변부 연구는 중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시선을 견지하고 있는 영화들인 <비정성시>, <아비정전>, <중경삼림>, <티벳에서의 7년>을 분석했다. 이를 통해 중국과 특수 관계에 있는 주변부인 대만, 홍콩, 티베트에 미치고 있는 중국의 패권주의적 행태를 만날 수 있었다. <비정성시>는 대만의 외성인 국가권력에 의한 본성인 학살 사건인 2·28 사건을 계기로 몰락해 가는 한 가족사를 조명한 작품이다. 대만의식의 성장, 양안 관계의 복잡한 방정식 등 대만의 현주소를 중국에서 건너온 대륙세력의 패권주의 비판과 대만 정체성 확산이라는 관점에서 읽어냈다. 중국 반환 전 홍콩인들의 혼란과 불안을 그리고 있는 <아비정전>과 <중경삼림>의 영상 언어를 통해서는 흔들리고 있는 홍콩 ‘일국양제’ 갈등의 본질적 양상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의 대립을 넘어 중국의 정치적 간섭과 패권주의적 통치 방식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티벳에서의 7년>의 영화 서사를 통해서는 티베트의 자치와 독립투쟁의 움직임을 억압하며 무력으로 진압한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의 패권적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이 영화는 티베트를 신비롭고 평화롭기만 한 지상의 낙원으로 보는 등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이 강해 이에 대한 비판을 통해 티베트의 현실을 직시하려 했다. 한반도의 주변부 연구를 위해 한반도 분단체제를 강대국들의 패권경쟁이 초래한 산물로 보는 관점으로 접근했다.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 2>의 분석을 통해 제주 민중이 겪었던 4·3사건의 고난과 동아시아 냉전 상황의 현실을 직면했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영상 메시지에서는 동족상잔의 비극과 현재진행형 분단체제의 모순적 상황을 읽어냈다. <경계>와 <무산일기>의 영화 서사는 이국땅을 유랑하는 북한 이탈주민의 극심한 취업난과 정체성 혼란 등 분단체제가 초래한 부작용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처럼 텍스트 영화들의 서사에 나타난 한국·중국·일본의 주변부는 국가주의와 패권주의에 희생된 불균등한 정치적 풍경을 보여준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들 영화에서는 화합과 협력, 융합과 상생의 ‘경계 넘기’ 서사도 만날 수 있다. <신들의 깊은 욕망>에 나오는 토리코와 가리야 기사의 결합 서사, <중경삼림>의 영상 언어가 강조하고 있는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긍정과 유연한 태도,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 2>에 나타나는 용서와 화해의 포용력과 인류애,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볼 수 있는 남북 병사들의 허물없는 형제애와 동족애 등이 그런 모습들이다. 이처럼 동아시아 주변부는 대립·갈등의 구도와 함께 화합·상생의 평화 이미지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중층적 정치적 지형을 보여준다. 이 같은 특성은 지배-종속 관계의 폭력성을 유발하는 국가주의 동일성의 가치를 전복하는 융합과 공생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지역적 역학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전망을 낳는다.
주제어: 영화 서사, 동아시아, 주변부, 국가주의, 패권주의, 분단체제 |A Study on the Peripherals of East Asia through Film Narrat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