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해양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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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온천에 관한 연구

Title
동래온천에 관한 연구
Alternative Title
The research on regarding Dongnae hot Springe
Author(s)
MaiEndo
Publication Year
2008
Publisher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URI
http://kmou.dcollection.net/jsp/common/DcLoOrgPer.jsp?sItemId=000002174822
http://repository.kmou.ac.kr/handle/2014.oak/8922
Abstract
이 논문은 현재 부산 문화권에 속해 있는 동래의 온천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한국의 전통문화와 근대문화의 교차점을 찾고 그 특성을 밝히기 위한 연구이다.

부산 지역의 문화권에서 동래가 부산의 일부인지, 아니면 부산의 중심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전통문화에 주안점을 둔 민족주의적 시각으로 본다면 부산은 개항까지만 해도 동래 지역의 문화권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그러나 근대화 이후에 만들어진 부산이 동래를 포섭하여 오늘과 같은 부산 지역의 문화권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동래는 조선조까지만 해도 역대 왕들이 요양을 하기 위해 찾던 곳이고 양반들이 살던 전통도시였다.

동래에는 동래학춤 외에 동래야류, 동래지신밟기 등의 독자적인 문화가 남아있고, 충신당을 비롯한 독진대아문, 망미루, 장관청, 송공단 등 동래부 관아건물 등 유서 깊은 건물이 남아있다. 동래부는 정치, 국방 면에서 요충지였고 오늘날의 부산이 상업도시인 것처럼 동래상인들이 중심이 되어 주변지역의 경제중심지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전국적 유통망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왜관을 통해 들어온 일본인들과의 거래를 독점하고 있었다. 

해방 후 동래가 부산에 속하게 되면서 전통문화의 중심지로서의 지위는 사실상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럼에도 오늘날 넓은 의미에서의 부산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밝히려면 동래를 이해하고 그곳의 전통문화에 대해 이해한 후에 일제가 근대문명을 들여온 근대기에 이르러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함께 밝혀야 한다고 본다. 부산 지역의 문화는 전통도시 동래의 문화가 ‘근대 식민도시’1)였던 부산의 문화와 습합(習合)내지 접변(接變)을 일으켜 만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어느 문화가 습합(習合)이나 접변(接變)의 결과라는 말은 서로 대등한 두 문화가 섞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이 논문에서도 동래온천의 한국적 역사와 전통이 일제에 의한 근대기의 변화와 섞였음을 전제하고자 한다. 즉, 동래온천에는 고대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온천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용해온 한국 전통문화의 일부로서의 역사가 존재했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대중휴양지이자 관광지로서의 동래온천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기에 부산을 건설하고 근대문명을 이입한 일제였다. 일제는 동래온천을 근대화 및 식민통치의 대상으로 ‘타자화(他者化)’2)3)하여 일본인들의 취향이나 식민통치 목적에 맞게 이를 재개발했다. 그러한 온천장의 건설과 이용, 운영에 한국인들이 참여하면서 소위 근대적인 의미의 ‘온천문화’, ‘관광문화’가 싹트기 시작해 이후에도 넓은 의미에서의 부산 지역의 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이러한 내력은 다른 많은 저작이나 논문에서도 부분적으로 언급된 내용이지만 그 계승과 변화의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밝힌 연구는 드문 편이다. 한국과 일본에는 많은 온천이 있고 온천에서의 숙박이나 치료, 관광에 관한 많은 안내책자가 나오고는 있다. 그러나 일본에 비해 한국에서는 온천문화의 발전과 목욕문화에 관해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나 논문은 그다지 많지 않다. 검색 시스템에서 ‘온천’으로 서적이나 논문을 검색 결과 자료는 총 100여 편에 불과하며, 그 가운데 문화에 대한 연구는 10여 편이고, 특별히 ‘동래온천’에 관한 연구논문은 법학적 측면에서 접근한 1편, 지질학적 측면에서 접근한 1편, 지리학적 측면에서 취락을 연구한 1편 등 도합 3편이 있을 뿐이다.

이 연구는 동래온천에서의 목욕문화의 계승과 변화를 토대로 부산 지역 연구의 단서를 찾으려는 노력이다. 나아가 대중적인 온천의 개발이 어떻게 한국인의 근대적 공중목욕문화로 이어졌는지에 대해 살피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이 논문은 시간을 초월하여 문화의 공통성을 재구하는 공시적(Synchronology)인 분석방법과 시간순서에 따라 일어난 일의 의미를 따지는 통시적(Chronology)인 분석방법을 함께 사용하고자 한다. 그러한 분석에 의하여 전통문화로서의 동래온천의 유래와 역사, 그리고 근대문화로서의 일본인에 의한 동래온천장의 개발 및 관광의 유행을 살펴보고, 나아가 대중적인 온천문화와 관광문화가 한국의 현대문화로 정착하고 전국적으로 확산된 바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온천의 개발 및 이용을 둘러싼 관점의 변화에 따라 이를 분석하고 논하는 방법론을 다르게 적용하려고 한다. 특히 근대문화의 하나인 ‘관광’을 둘러싼 일제 시대와 해방 이후의 평가는 다르게 내려질 수밖에 없다. 제국주의적 식민주의에 의한 ‘관광’이 식민국을 대상화하여 가치를 발견하고 이용하는 ‘타자화’의 과정 내지 결과임에 비해, 해방 이후의 그것은 주체적인 오락문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식민통치 수단의 하나였던 ‘위생’ 관념과 ‘관광’에 대해서는 탈(脫)식민주의적 관점에서의 평가가 필요하고, 주체적인 오락문화에 대해서는 여가문화를 분석하는 관점을 적용하려고 한다.

이 논문의 연구목적에 근접한 선행연구로는「동래온천지역의 지열수와 지하수의 지화학적 특성」,「온천의 법률관계-동래.해운대 온천을 중심으로」가 있고, 석사논문으로 김재관의 「동래온천 취락연구」와 윤양수의 「동래온천장의 도로교통 정비에 관한 연구」가 있다. 여타 온천에 관한 연구로는 「수안보 온천관광취락의 형성과 구조」,「우리나라 온천지역의 도시화와 온천관광도시의 개발에 관한 연구」,「한국 온천관광목적지의 수명주기」,「온천관광영향에 대한 지역주민인지도-온양.이천. 보문온천을 중심으로(溫泉觀光影響に對する地域住民認知度-溫陽.利川.普門溫泉を中心に)」,「온천관광지 개발실태 조사연구」등이 있다. 그러나 이 논문들은 주로 온천관광지에 대한 지열수, 지하수 등 과학적 근거 내지 취락, 교통, 도시화 등 지리적 특성 내지 관광지 개발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지리 내지 과학을 포함 동래 지역의 전반적인 문화까지를 다루고자 하는 이 논문의 목적과는 차이가 있다.

온천관광지의 지역 및 지역문화에 대해 쓴 논문으로는 「온천관광지 이미지, 속성 및 선호도 분석」이 있으나4) 온천의 역사와 지역문화를 함께 검토한 논의는 그다지 많지 않다. 다만, 대상으로 삼은 지역은 다르지만「유성온천과 유성문화」5)란 논문은 온천의 과학적, 의학적 특성과 더불어 지역 인근의 연구단지, 자연과학공원, 대학교, 그리고 주민들의 문화의식과 온천문화제에 대해서까지 언급하고 있어 이 논문의 귀감이 되고 있다.

저서로는 부산의 온천을 다루면서 일본과 한국의 온천관과 목욕풍습의 차이, 한국의 근대화에 등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한 다케쿠니 도모야스(竹國友康)의『한국온천이야기(韓国
井改建碑)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고, 개항기를 맞아 일본인과 동래의 관계가 깊어지는 과정에 주의하고자 한다.

제 3장에서는 동래온천의 근대화를 중심으로 당시 온천의 개발 및 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즉 개항 이후 간헐적으로 온천을 이용하던 일본인들이 어떤 경로를 거쳐 그 이용을 본격화했는지 이에 대한 동래주민들의 반응은 어떠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다시 그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여 동래온천장 경영권을 확립하여 일본인여관과 요정 등을 만들었는지 살피고자 한다. 차차 한국인들이 온천장 경영에 참가하면서 온천문화와 관광문화가 한국인들 사이에 퍼져가게 된 경위도 살피려 한다. 더불어 이처럼 동래온천장이 일본인가로 변해가는 과정에서의 풍속의 변화, 예를 들면 경편철도, 관부연락선, 경부선철도 등 교통 및 오락문화의 발달 등에 주목하고자 한다.

제 4장에서는 해방 후에 대중온천문화가 어떻게 전국에 확산되어 관광과 연결되어 행해졌는가를 살펴보고 대중적인 온천문화 및 목욕문화가 동래온천장에서 확산되어갔음을 밝히고자 한다.
史)와 정신(精神)』이란 저술을 출판하면서 그 안에 동래온천에 관한 내용을 포함시켜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그 후로는 다시 동래온천에 대해 이렇다 할 만한 저작이나 논문이 나오지 않는 가운데, 부산 전반에 관한 저술 가운데서 일부를 할애해 동래온천을 소개하는 정도다. 근자에 나온 주목할 만한 논문으로, 2007년 에서 “근대, 관광을 시작하다”란 기획전서 도록에 수록된 임화순 교수의 「동래온천의 근대사적 의미」8)란 논문이다. 임 교수는 이 논문에서 동래온천을 일본인을 위한 “보양형(保養型)”, “환락형(歡樂型)” 등으로 칭하면서, 특히 일본 국내의 온천들과 비교한 결과로써 동래온천의 네 가지 특징을 제시하고 있다. 임 교수의 논문은 온천을 중심으로 인근 주민들의 풍속이나 제도, 시설, 기관 등을 연관시켜 언급하여 동래온천을 통해 부산 지역의 문화를 고찰하려는 이 논문의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었다.

그러나 임 교수의 논문은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래온천장이 마치 일제시대에 일본인들만의 시설로 이용된 것처럼 기술함으로써 그 이전인 고대로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동래온천의 역사를 단절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래온천의 온천문화와 목욕문화, 관광문화가 일제 말기와 해방 이후 왜, 그리고 어떻게 한국문화의 가운데 뿌리를 내리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역시 단절적으로 보고 있다.

이에 이 논문은 온천이나 목욕에 대한 과학 내지 상식적 정의와 더불어 동래온천의 전통을 거론하여 한국의 온천문화가 단지 일제시대에 형성된 근대문화만이 아님을 거론하고자 한다. 그 위에 일제시대에 일본인의 근대적 시설 구비 및 경영을 통하여 온천관광지로 형성되었음을 살피고자 한다. 나아가 온천문화가 어떻게 일본인 뿐 아니라 한국의 일반인들에게 퍼져 오늘날과 같은 목욕문화 및 관광문화 형성하게 되었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이를 정리하면 이 논문은 한국의 고대로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역사와 일제시대, 그리고 해방 이후의 동래온천의 역사를 연결론적 입장에서 기술하려는 것이다.

이 논문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 기술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는 온천의 상식과 목욕관을 다루고, 다음은 동래문화의 전통적 측면, 그리고 본격적인 온천개발과 근대화, 마지막으로 해방 이후 부산을 비롯한 한국인의 삶에 스며든 온천문화, 목욕문화에 대한 설명을 하고자 한다.

이를 본론 제 1장에서는 온천의 특징과 정의를 간단히 언급하면서'온천'의 관념에 대해 이해하고자 한다. 아울러 한국과 일본의 온천의 역사 및 문화를 비교하고자 한다.  

제 2장에서는 동래온천의 역사부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즉 동래의 지역적 특성과 더불어 신라시대 이래 조선후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왕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동래온천을 즐겨 찾아온 역사를 살피고자 한다. 특히 영조시대에 동래부사 강필리가 온천을 대대적으로 정비하였음을 기념하여 세운 온정개건비(温
泉物語)』6)가 있다. 이 저서는 저자 자신도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1960년대에 김용욱 교수 등의 논저7)를 참조하여 쓴 것이다. 김용욱 교수는 근래에『부산의 역사(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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