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선박안전법상의 ‘대행’제도와 정부조직법상의 ‘민간위탁’제도의 공통점은 모두 국가사무 이행주체로서 아직도 민간에 대한 충분한 신뢰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민간의 전문성을 신뢰하더라도 그 신뢰를 담을 수 있는 법제도적 장치로서 입법기술의 창의력 부족이라고 할 수 있다. 사인을 활용한 국가행정사무의 처리에 있어서 권한과 책임의 이전여부라는 개념론적 도그마에 사로잡혀 실용적인 접근을 하지 못하고 위탁과 대행의 양 극단 사이에서 혼돈을 거듭했던 것이다. 이 논문은 최소한 선박안전법상 선박검사의 영역에서는 국제협약과 외국(EU, 미국)에서 취하고 있는 delegation (국민의 권리의무 관련사무에 관한 대리효과를 수반하는 특수한 민간위탁)이 위탁과 대행의 양 극단의 한계를 벗어나 간결 명료한 법률관계의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실용적 대안은 선박안전법 뿐만 아니라 사실상 광의의 선박검사에 해당하는 각종 해사법규상 민간의 전문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중대한 국가사무의 사인에 대한 위탁에서 선택 가능한 법형식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조직법상 민간위탁의 기준을 엄격히 따를 때 선박검사는 국민의 권리의무와 관련되기 때문에 사인에게 위탁할 수 없고 정부가 직접 수행해야 한다. 선박안전법상 업무의 대행의 기준을 엄격히 따를 때 대행기관은 사실행위(단순 행정사무)만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선박의 감항성과 안전에 관한 준법률행위적 행정행위인 확인행위(선박안전법 등 기술규칙 적합성 평가행위)로서의 선박검사를 수행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선급법인 등 공인선박검사기관이 국민의 권리의무와 관련된 국가사무를 준법률행위적 행정행위(확인행위) 또는 권력적 사실행위로서 위탁이 아닌 대행의 방식으로 수행하게 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이 논문은 해상의 영역에서 선박검사는 한국법상의 위탁이나 대행과 다른 국제사회의 오랜 관행과 규범에 의해 형성된 고유한 delegation의 법형식을 취할 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